모든 사람은 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회원이 되어 능력을 사용하려면 어느 정도의 적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적성은 사실 태어날 때 부터 거의 결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왠만한 회원들은 회원들의 가계에서 태어나 일족의 보호 아래서 성장해간다. 하지만 모든 일에 예외가 있듯 회원들의 혈통 밖에서 태어나는 자질을 가진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일반인과는 달리 신체적으로 월등히 뛰어나며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서 부모들은 아이를 꺼려하고 결국은 버리는 길을 택했다.
그럼 회원을 찾는 능력을 지닌 회원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소질을 지닌 아이들을 찾아 협회로 데리고 와 보호라는 이름하의 관리를 했다.
고아원이나 길거리에서 주워져 협회로 오게된 아이들은 한 순간에 회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능력을 키워나가는 교육을 받게 된다.
이런 밖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일족이라는 울타리가 있는 아이들과는 달리 딱히 정해진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험하고 위험한 일에 노출되기 쉬워진다.
이런 환경에서 슈톨렌은 태어났다. 10살이 채 되기도 전에 부모에게서 버려져 고아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고아원의 원장은 아이들에게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었다. 부모를 찾느라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보듬기는 커녕 호되게 혼을 냈다.
다른 선생님들도 큰 차이는 없었다. 다들 사무적인 태도로 아이들을 접했고 정신적인 교감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쌀쌀한 분위기의 고아원이었다.
슈톨렌은 꽤 오랫동안 그 곳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있었고 자기 나름대로 적응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린 바움쿠헨이 고아원으로 오게된다.
어린 바움쿠헨에게는 원장선생님도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무섭고 거리감을 느꼈으며 낯선환경에 내던져진 것에 적응하지 못해 겉돌았다.
처음에는 정말 같은 고아원 내에서 지내고 있다 뿐이지 그것 외에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도 없었다.
제대로 대화를 나눈적조차 없이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자기 중심적인 성격에 외로울 때도 괴로울 때도 강한 척 하며 우는 아이들을 조롱하던 슈톨렌은 다른 아이들에게서 고립되어 있었다. 그 성격탓에 괴롭힘도 있었다.
자기보다 훨씬 덩치가 큰 아이들과 승산 없는 다툼을 계속 하면서 슈톨렌은 치사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시야를 방해하고, 다른 어른을 끌어들이고, 도구를 사용하고, 숨어있다가 기습하고... 아이들은 슈톨렌을 다른 의미로 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걸고 넘어지는 녀석들은 남아있어서 괴롭힘이 완전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라도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면 슈톨렌은 어른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의 한도에서 철저하게 고통을 돌려줬다.
잔악하고 비겁한 아이었다.
그 날은 슈톨렌이 감기에 걸려 몸이 좋지 않았다. 또 시비를 걸어 싸우려 드는 아이에게 순간의 실수로 얻어맞고 쓰러지고 만다.
잠시 멍해진 틈을 타 슈톨렌에게 당한적이 있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비틀거리던 슈톨렌에게 달려들었다.
정말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맞았다. 아이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정신을 잃기 직전인 슈톨렌만 그 자리에 두고 방으로 돌아갔다.
열로 멍한 머리와 너무 맞아 얼얼해진 전신만을 겨우 인지한 채로 슈톨렌은 누운채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멀리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왔다.
벌써 그런 계절이 왔던가. 고아인 자신에겐 상관없는 일이다. 희고 차가운 결정이 코 끝에 닿고 녹아내렸다. 어느새 하늘에서는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가에 떨어진 눈이 녹아서 흘러내렸다.
볼을 타고 따뜻해진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건 눈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 한 채 겉돌던 바움쿠헨이 눈이 내리는 걸 보고 마당으로 나왔다가 쓰러져 있는 슈톨렌을 발견했다.
자박자박하는 작은 발걸음 소리와 하늘과 같은색을 한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오는 걸 마지막으로 슈톨렌은 정신을 잃었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슈톨렌은 고아원의 자기 방에서 누워있었다. 이마에는 체온으로 미지근해진 물수건이 얹어져있었다. 문득 이불이 무겁게 느껴져 고개를 돌려 침대 근처를 봤다.
작은 바움쿠헨이 이불 끝을 붙잡고 잠들어있었다.
그 날 이후로 슈톨렌과 바움쿠헨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슈톨렌은 자기에겐 없었던 동생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고 바움쿠헨은 고아원에 와서 처음으로 친한 상대가 생겨서 기뻤다.
그걸 다른 아이들이 고운 시선으로 봐주진 않았다. 여지껏 자기들을 무시하고 괴롭히던(처음에는 괴롭히려다 역으로 당한거였지만) 슈톨렌이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면서 웃는게 고깝게 여겨졌던 것이다.
아이들은 목표를 바꿔 바움쿠헨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리고 울보였던 어린시절의 바움쿠헨은 괴롭힘에 울기만 했지만 슈톨렌이 자기 탓이라며 멀어질까봐 괴롭힘 당하는 걸 슈톨렌에겐 말하지 않았다.
맞은 자국은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다니는 이상 전부 숨기는건 무리가 있었다. 슈톨렌은 많이 화를 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복수를 했다. 이번에는 적당히 봐주는 것 따위 없었다.
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몇 개나 빠진, 눈에 띄게 다친 아이가 나온 뒤에야 고아원 원장은 심각성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차 소리가 다가오는 걸 뒤로 슈톨렌과 바움쿠헨은 손을 잡고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 길거리를 전전하다 능력자를 찾으러 온 회원에게 발견되어 두 사람은 회원이 되었다.
+새 능력 얻은 이후
+짝사랑
나는 쭉 이어진 길 위에 서있다.
만약 이 길의 끝에 장애물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이 길에 서있지 않겠지.
막다른 길에 서있는 미래를 본 내가 발을 돌리면 발을 돌려 길을 되돌아오는 나를 10분 전의 내가 발견했을테다.
또 그것보다 10분 전의 내가 돌아오는 내 모습을 보고 결국은 갈림길 앞에 선 나는 막혀있는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는 미래엔 막힌 길을 걷는 과정이 생략되고 '막히지 않은 길을 걷는 나' 만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니 나는 그저 눈에 보이는 10분 후를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나는 항상 옳은 길을 걸을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래야 로우 위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생각한다. 미래를 엿보는 능력. 내가 본 미래는 반드시 사실이 된다.
그렇기에 내가 로우 위 님을 따르는 한, 로우 위님은 우주의 법칙에 선택된 진정한 신인 거라고. 그렇게 말하셨을 때 나는 전신을 감싸오는 감격과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이 능력으로 정말 괜찮았던 것일까.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와 동시에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일이 된다.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변하지 않는 길. 나는 또 앞으로 있을 기나긴 좌절을 이 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가능성에 희망을 품는 것조차 용서되지 않는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어차피 이루어질 일 없는 마음이면 적어도 꿈에서만, 상상 속에서만이라도 그에게 접하고 싶었다. 꿈꾸는 것 만으로는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 괜찮았다.
하지만 그를 향한 마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현실과 망상간의 경계는 벌어져가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져나간다.
예를 들면 찬 바람이 부는 거리. 조금 앞서 걸어가는 로우 위의 차가워진 손. 그 손을 체온이 높아 따뜻한 자신의 손으로 꽉 붙잡아 온기를 전하고 싶었다.
10분 후에는 어차피 코트 주머니 속으로 사라져버릴 거라고 해도 그 손을 잡고 싶었다.
그에게 안기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올려다 본 얼굴엔 그림자가 져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귓가에 닿는 달아오른 숨결과 안을 채우는 뜨거운 열. 그의 목소리가 사랑한다고 말하며 내 이름을 부른다.
그와 함께 품고 있던 모든 욕정을 토해냄과 동시에 눈을 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평소대로 변함없는 방 안이었다. 축축한 감촉에 바지를 본다.
결국 꿈은 꿈. 현실에 흔적으로 남는건 허무와 깊은 자괴감 뿐이다.
의자에 기대 잠시 동안의 휴식을 즐기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얼마가 지나도 그가 이쪽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10분 후에도. 그보다 더, 먼, 미래에도.
가능성은 사라지고 환상도 사라진다. 미래는 고정되어 있다.
이 능력이 사라지는 날까지도 나는 이 능력에 얽메여 살아갈 것이다. 그 끝은 언제가 될까?
자신이 위험을 피하는 길을 선택해 살아간다면 그 끝은 이 수명이 다 하는 그때, 혹은 로우 위에게서 자신이 더 이상 필요 없어져 그의 손에 죽어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미래를 안다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지금'의 슈톨렌에게 보이는건 10분 후가 전부라 그보다 먼 시간의 일은 그 순간의 10분 전이 아니면 무슨 일인지 까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끝은 알 수 없다. 그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져 눈을 감았다.
바라건데 조금만이라도 더 오래 그의 곁에 있을 수 있기를. 그런 바람을 가슴에 품고 나는 다시 미래를 본다.
바움쿠헨이랑 슈톨렌이 처음 만난 건 바움쿠헨이 독일에 있는 협회 지부로 오게 되서였음.
바움쿠헨의 부모님은 둘다 독일인이고 회원인데 한국 지부로 잠깐 오게 됬다가 거기서 만나 결혼함.
그리고 계속 강원도 평창에 자리잡고 살게 되는데 일 하러 갔다가 큰 부상을 입게되서 어린 바움쿠헨을 돌볼 수가 없어짐.
그래서 바움쿠헨은 부모님과 떨어져 부모님의 일족이 있는 독일지부로 이동함.
거기서 바움쿠헨을 마중나온게 슈톨렌임.
당시 한 6,7살 쯤 되던 바움쿠헨은 낯가림이 심해서 알에서 깨고 처음 본 걸 부모로 인식하는 오리새끼마냥 공항에서 처음 만난 슈톨렌 뒤만 졸졸 따라다님.
슈톨렌은 처음엔 짜증내고 때놓으려 하다가 밤에 부모님 찾느라 울고불고 하는 걸 달래다보니 좀 불쌍하기도 하고 해서 어울려주게 됨.
슈톨렌과 바움쿠헨의 일족은 힘있는 회원이 많아야 일족이 성공할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음.
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받다보니 바움쿠헨의 능력이 뭐든 둘로 찢는 능력이라는걸 알게 되고 일족의 어른들은 이건 잘 키우면 호랑이 새끼가 되겠다며 좋아함.
그러던 와중 바움쿠헨의 부모님은 부상이 완치되지 않아 회원으로서의 능력을 잃고 일족에서 제명당할 위기에 처함.
바움쿠헨의 능력이 A급이라는걸 아는 어른들은 바움쿠헨의 부모님을 회유함.
네 아들을 너희들을 대신해서 임무에 내보낸다면 너희들을 제명하지 않고 그대로 지낼수 있게 해주겠다고 함.
바움쿠헨의 부모님은 회원으로서의 삶 이외의 것은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쫓겨나는게 두려웠음. 그래서 아직 어린 바움쿠헨이 임무에 나가는 것에 동의함.
슈톨렌은 C나 D급 회원이라 높은 분들한테는 그리 가치있는 존재는 아니었음.
그게 컴플렉스이기도 했고 그걸로 일족에 반항심이 들기도 함.
자잘한 임무에 나갔다가 (바움쿠헨은 집보기) 같은 지부에 있던 로우 위를 만나게 되고 로우 위 쪽에서 말을 걸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됨.
슈톨렌은 로우 위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음. 어느 일족에 속해있지도 않고 랭크도 낮은 회원이지만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고 꾸준히 구설수에 오르는 인물.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높은 평가나 관심을 받은 적이 없는 슈톨렌에겐 화제의 인물이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게 이상하고 신기하고, 하지만 나쁘진 않은 기분이었음.
협회 내의 카페에 앉아 로우 위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맛에 감동하고 있는 슈톨렌에게 목소리가 들림.
시간을 다루는 능력이란건 흔하지 않지. 자네의 능력은 가치 있는 걸세.
슈톨렌은 당혹스러웠음.
태어나 처음으로 들은 자기를 인정해주는 말에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음. 로우 위는 할 말을 못찾는 슈톨렌에게 다시 만나게 될거라는 말을 하고 사라짐.
슈톨렌은 로우 위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다가 식은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남.
슈톨렌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깜짝 놀람.
꽤나 위험한 A국 지도자 설득 임무의 발탁 리스트에서 바움쿠헨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었음.
아직 어린애한테 무슨 짓이냐며 어른들에게 따졌지만 들은척도 하지 않았고 슈톨렌은 다른 방향으로 설득해 억지로 자기도 임무에 넣어달라고 함.
바움쿠헨이 슈톨렌을 잘 따른다는 걸 아는 일족의 어른들은 마침 잘됬다며 두말않고 슈톨렌도 함께 파견함.
임무 후에 오랫만에 만난 바움쿠헨은 방문을 잠그고 숨어있다가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에 달려나와 슈톨렌을 반겨줌.
눈가가 빨간게 또 울고 있었다는걸 확연히 알 수 있었음.
슈톨렌은 이런 꼬맹이한테 무슨 일을 시키려는 거냐며 터져나올것 같은 욕지거리를 억지로 삼킴.
허리께에 있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내가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 지켜줄까하는 생각을 함.
그리고 임무 당일. 슈톨렌은 바움쿠헨에게 자기 곁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말함. 바움쿠헨도 끄덕임으로 답함.
임무 내용은 설득이지만 사실 협박에 가까운 거라 일단은 돌파하는게 우선이었음. 다른 회원들은 바움쿠헨을 앞세워 문이나 벽을 파괴하게 시켰음.
벽 너머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있다는걸 알면서도.
겨우 회원 10명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던 것도 있어서 임무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음.
중요한 임무였던 만큼 이목이 집중되어있었고 많은 회원들이 관심깊게 주시하고 있었음.
그런 일이 실패로 돌아갔다간 돌아가서 어떤 취급을 받을 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음.
그렇게 한참을 진전이 없자 후방으로 빠져있던 로우 위가 나섬.
다른 전투능력 없이 설득능력만을 지닌 로우 위는 계획에서도 맨 끝에 등장해 장군을 설득하기만 하면 되는 역할이었음.
원작대로 로우 위의 설득 몇번으로 견고하던 방어벽들이 모두 허물어지고 B장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뒤 로우 위는 유유히 임무를 마치고 건물에서 빠져나옴.
회원들 모두가 돌아갈 채비를 하는 중에 로우 위가 슈톨렌에게 말을 검. 또 만날거라고 했지? 라며.
로우 위도 같은 방향으로 간다고 하며 같은 비행기에 탐.
잠든 바움쿠헨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옆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로우 위를 흘끗 쳐다봄.
로우 위가 고개를 돌리고 슬쩍 미소지어보임. 슈톨렌은 이 표정을 읽기 힘든 사내에게서 위험한 무언가를 감지함.
이 사내가 작게는 자기 자신, 크게는 전 세계, 이 우주를 뒤흔들 것 같은 불안하면서도 가슴이 뛰는 묘한 예감이 들었음.
그래서 헤어질 때 로우 위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아직 잠이 덜 깬 바움쿠헨을 업고 집으로 돌아옴.
그 뒤로 몇번 로우 위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짐.
주로 만나는 장소는 협회 지부에서 꽤 거리가 있는 카페로 회원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골라서 갔음.
몇 년째 만남을 가지는 동안 슈톨렌은 로우 위의 사상에 끌리는 것을 느낌. 로우 위가 잣대가 되어 선악을 구분하고 악한 것들, 하찮은 것들을 모두 잘라낸 완벽한 세계.
여지껏 그 잘려나가는 측에 속해있던 슈톨렌은 자신이 로우 위의 잣대에서는 잘려나가지 않는 측에 속한다는게 기뻤음.
계속해서 신뢰를 담은 말을 입에 담는 로우 위. 계속해서 자기를 인정해주는 로우 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 거의 넘어가기 일보직전이었음.
아니, 이제 나를 따르라는 한마디만 있으면 바로 넘어갈 그런 상태였음.
성장한 바움쿠헨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하게 됨.
어른들에게 자신이 인정받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 건방져지기도 함. 슈톨렌만 따라다니던 꼬마는 이제 없는거나 다름없었음.
위험한 임무라며 말리는 슈톨렌에게 자기는 슈톨렌과 달리 강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을 하게 되고
슈톨렌은 그런 바움쿠헨의 모습에서 자신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일족 어른들의 사상을 엿봄.
그래도 남아있는 정은 있어서 아직 동생같고 걱정되기도 하는 부분도 있어서 어울려 다니지만 언동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함.
바움쿠헨은 인정받는데 자신은 인정받지 못하고,
바움쿠헨은 커져가는데 자기는 그대로인채로 키도 얼굴도 그닥 어른스러워지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한테는 차이고, 키가 작아서 겪는 수모와 동안 때문에 얕보여서 생기는 시비들.
이 세계 자체에 짜증이 남.
그리고 로우 위가 선언함. 자기가 신이 되겠다고.
슈톨렌은 누구보다도 먼저 로우 위의 의견에 찬동하고 그를 따르겠다 맹세함.
얼떨결에 따라온 바움쿠헨도 함께.
1.
리베리카와 선지의 죽음으로 한차례 멘붕을 겪은 하이는 그녀들과 같은 고통을 로우 위에게도 돌려주기로 함.
하지만 신의 힘은 같은 신에게는 통하지 않음. 하지만 신의 힘을 담은 물리적인 힘이라면 어떨까. 하이는 신의 힘으로 총과 쏘아지는 순간 절대로 심장을 관통하는 총알을 만들어냄.
선지의 주검을 안았던 손에 들린 총과 총알에는 선지의 피가 묻어있음. 한발뿐인 총알을 장전하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뒤로한채 로우 위를 찾아 지상으로 올라감.
로우 위는 슈톨렌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음. 최선의 미래를 얻은 사람치고 이상하게 슈톨렌의 얼굴은 약간 창백해서 로우 위는 약간 의문이 들었음.
슈톨렌이 발을 멈춤. 로우 위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너머에 이쪽으로 걸어오는 하이가 있었음.
고개를 숙이고 터벅터벅 걷는 하이의 손에는 회원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반인의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흉흉한 게 들려있었음.
일정한 거리에 도달해 하이가 발을 멈춤. 그리고 고개들어 로우 위와 눈을 마주함.
그 눈에는 전과 같은 기지와 희망같은건 바닥나있었음.
하이가 손을 들어 총구를 겨눔. 로우 위가 평범함을 바라던 네가 정말 그런걸 쏠수 있냐고 설득의 밑밥을 깔며 한걸음 내딛음.
신을 해칠수 없다는 우주의 법칙. 원하는게 이루어지는 신의 힘. 두 힘이 충돌하는 가운데 총알이 로우 위의 심장을 노리고 발사됨.
마치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것 처럼 잠깐의 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고 팍- 하는 축축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피가 튐.
'로우 위가 죽는다'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본 슈톨렌이 로우 위를 밀치고 대신 총에 맞았음. 심장을 관통한 총알에 슈톨렌은 그대로 숨을 거두고 한번 고정되어있던 미래가 수만가지 가능성으로 분열됨.
발치에 무너져내리듯 쓰러져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는 슈톨렌과 발사되는 반동에 총을 떨어뜨린 하이, 다가오는 회원들.
로우 위는 망연자실해짐.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는 것도 완벽한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음. 로우 위의 시선이 움직이고 하이를 향해 걸어감. 걷다가 달림.
로우 위가 하이에게 주먹질을 하고 하이도 조금 밀리지만 맞서서 주먹질을 함. 두 신의 정신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세계도 함께 불안정해짐.
세계가 뒤틀리기 시작함. 땅이 갈라지고 하늘에 유리처럼 금이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함. 그리고 모든 것은 카오스 상태로 돌아감.
어둠 속을 부유하는 하이의 눈에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의 환영이 스쳐지나감. 회원들의 모습과 리베리카. 그리고 선지.
로우 위에게도 이제까지의 자신의 일생과 자기의 인생에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감. 그리고 처음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고자했던 순수한 마음을 떠올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둘은 서로를 눈 앞에 두고 서있었음.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손을 잡고 원래 세계로의 회귀를 바람.
맞잡은 두 사람의 손 안에서 빛이 퍼져나와 어두웠던 세계를 감쌈.
그리고 하이가 눈을 뜬 곳은 원더 고등학교의 교실. 평범한 수업시간이었음.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있고 전학생은 없었음. 하늘은 맑았고 세계는 평화로워서 왠지 눈이 시큰했음.
얼마 뒤, 하이는 부모님과의 상담 후 쥬브나일 고등학교로 전학감.
그리고 제일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러 감. 작고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운명의 사람.
2.
시점은 로부스타 전 이후, 슈톨렌은 상처 치유를 위해 병원에 입원중.
로우 위는 갑자기 모든게 허무해졌음.
자기가 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 어딘가에서부터 일그러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함.
고뇌하던 끝에 아직 입원중인 슈톨렌을 찾아가 둘이 도망치자는 말이 진심이라면 함께 와줄건지 물어봄.
이 시점에서 미래가 보였다 말았다 하던 슈톨렌은 로우 위가 그 질문을 할 거란걸 미리 알고 있었음. 그리고 짧은 10분 동안 그 질문의 답을 고민했음.
대답은 yes. 로우 위의 원대한 사상에 이끌린 거라 그 말에 실망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지금 와서 로우 위를 떠나기엔 그 동안의 존경과 충성도 진짜여서 그럴수가 없었음.
로우 위와 슈톨렌은 협회를 나와 작은 카페를 차림. 어차피 멀리 떠난다 해도 세계 어디에도 협회는 있었고 추격자가 붙을거라, 차라리 능력을 이미 알고 있는(다른 말로 만만한) 회원들이 있고
소동이 일어날 경우 일반인들이 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한국에 남기로 함. 심지어는 쥬브나일 학교 근처.
협회에 로우 위가 사라지자 로부스타의 일족도 제명에서 벗어나고 다른 회원들도 하이를 섬기게 됨.
어느정도 제자리로 돌아가자 협회에서는 로우 위와 슈톨렌의 처리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고 한때 로우 위를 존경했던 회원들이 배신감을 담아 찾아옴.
그리고 그 때마다 번번히 실패함. 이상하게도 만날수가 없었음. 슈톨렌의 아무에게도 말 한적 없는 새 능력이 자리를 잡아 경보 역할을 해줬기 때문.
실패가 계속되고 추격자가 찾아오는 빈도가 점점 줄어듬. 그리고 나중에는 그냥 방치하게 됨.
길 건너편에 은퇴한 로부스타의 가게가 생김. 가게간의 경쟁도 하고 정보도 나누면서 로우 위와 로부스타가 소소하게 친해짐.
발렌타인은 대놓고 로우 위의 커피를 마시러 오기도 함. 가게 앞을 지날때는 쭈뼛거리던 하이도 이제는 인사하고 지나갈 정도가 됨.
아무도 빠지지 않은 채로 평범한 일상이 계속 되는. 그런 엔딩...
처음 우리가 만난게 언제쯤이더라.
너는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일방적으로 네 모습을 봤을 뿐이니 말이야.
꽤 멀리 있었지만 난 확실하게 볼 수 있었지. 내가 시력이 좀 좋잖아.
그때 너는 빈 훈련실에서 혼자 남아 훈련을 하고 있었어. 한 손에는 스톱 워치를 들고 이것저것 떠밀어보며 실험을 해보고 있었지.
응? 나야 뭐, 훈련실이 내려다보이는 복도에서 커피나 한잔 하고 있었지. 로우 위를 졸라 내려달라고 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돌아가던 중이었어.
또 질투한다. 그럴것 없다니까. 그랑은 오랜 친구라 친밀한것 뿐이지 네가 걱정하는 그런.. 동성애 적인 관계랑은 달라. 너랑 바움쿠헨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뭐, 네가 질투하는 대상은 나와 함께 있던 로우 위가 아니라 로우 위에게서 커피를 받은 내 쪽이겠지만.
아무튼 너는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고 나는 딱히 할 일도 없어서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사물 두개를 밀어보기도 하고 시간차로 능력을 써보기도 하고.
너라는건 몰랐지. 그냥 어린 회원이 참 열심히 하는 구나 하고 조금 감탄했을 뿐이야.
하하. 알고보니 어린.. 은 아니었지만.
항상 너는 훈련장에 제일 늦게까지 남아있었어. 기숙사의 소등시간이 다가오고 불이 꺼지기 직전까지.
난 정말 가끔 그 주변을 지나갔기 때문에 두번째로 널 봤을때는 아, 저번에 걔가 또 있네. 하는 정도였어.
그리고 세번째, 네번째.. 그만큼 보면 좀 신경쓰이지 않겠어. 나도 사람인데. 슬쩍 다른 회원한테 물어봤지.
저기 남아서 훈련하는 회원이 누구냐고. 얼굴을 찌푸리더라. 너 대체 주위에 어떻게 대하고 다녔길래..
아무튼 그때서야 나는 네 이름을 알게 됬어. 슈톨렌.
네 모습이 신경쓰여서 나는 로우 위의 방에 뺀질나게 찾아가게 됬지.
로우 위의 방으로 향하는 통로. 거기가 내가 처음 널 발견한 곳이었으니 말이야. 제일 잘 보이는 곳이기도 했고.
로우 위는 의아해하긴 했지만.. 내 성격 알잖아. 친구한테 찾아오는게 뭐 그리 이상한 일이냐고 말하곤 마무리로 멋진 미소를 지어줬지.
로우 위도 납득한 건 아니었을테지만 마침 길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어.
생각해보면 로우 위는 그때부터도 이미 신이 되려는 계획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것 같아.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기아와 전쟁. 그런거에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아마 네가 본적 없는 얼굴일거야.
진심으로 분노하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진심으로 그들의 고통을 자기것처럼 느끼고 있기에 나도 적당히 맞장구를 쳤어.
솔직히 과다하게 이입하고 있는걸 빼면 틀린거 없는 말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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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의 직접적인 대면은 7년 전쯤일거야. 로우 위와 잠시 나온 길에 다른 회원과 다투고 있는 네 모습을 봤어.
우와. 처음 나온 말은 그거였어.
너 정말 사납더라.
너보다 머리 두개 더 키가 크고, 널 세명 세워둔 것 만큼이나 덩치가 큰 회원한테 한마디 지는 것 없이 따박따박 따져드는걸 볼 때는 정말 한대 때리고 싶을 만큼 얄미워보이기도 하고,
어디서 저런 배짱이 나오나 신기하기도 했고.
참다 못한 상대방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할때쯤 아, 이제 슬슬 위험하다 싶었어. 그리고 곧 예상대로 주먹을 휘두르더라.
꾸준한 훈련의 성과였을까, 너는 그 움직임을 가볍게 피하고 그의 배후로 가 등을 떠밀었지.
난 사실 그 전까지는 네 능력이 어떤건지 잘 몰랐어. 물건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능력인가? 하는 추측만 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는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졌고 너는 멱살을 잡힌 탓에 조금 주름이 진 앞섶을 정리해 옷차림을 바로 하고는 '약한게 어디서' 라고 비틀린 웃음을 짓고 그 자리에서 떠났지.
사라진 그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게 조금 궁금했어.
그렇다고 네 어깨를 붙잡고 물어본다해도 네가 순순히 가르쳐줄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고 말이야.
딱히 급한 일이 있던것도 아니라 그 근처에 멈춰선채로 그가 사라진 자리를 보고 있는데 딱 10분 후에 그가 다시 나타났어.
소동도 가라앉아 나와 로우 위만 남은 복도에 말이야. 아까 등을 떠밀려 넘어지던 그 자세 그대로 홀연듯 나타났지.
그는 아직도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등뒤에 서있을 너를 찾으며 주먹을 휘둘렀어. 웃긴 모습이지. 너는 10분전에 이미 떠났는데 말이야.
얼빠진 얼굴로 아무도 없는 복도를 둘러보던 그는 식식거리며 널 찾으러 떠났어.
나는 재미있는 능력이구나 싶어서 로우 위에게 한마디 하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왠일로 그녀석이 웃고 있었어.
네가 떠난 자리를 보면서 웃고 있었어.
뭐, 그때가 아니었을까. 그녀석이 널 눈에 넣게 된건.
저번에 백업하면서도 에이 그래도 설마 터지겠어 하고 있었는데 오늘 터진거 보니까 진짜 불안해져서 다 옮겨두기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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