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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우신

[바움슈톨/글] 손

+93화 쯤 





눈 앞에 펼쳐진 어른보다 작은 손바닥. 하지만 내 손을 전부 감싸고도 남는 든든하고 따뜻한 손. 

그 손을 쉽게 잡을 수 있었던 날들이 있었다. 



어딘가 달관한 표정의 발렌타인이 말한다.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좌절스럽기 짝이 없다. 
듣는 동안, 분명히 집중하고 있었을 터인데 왠지 와닿지가 않았다. 그의 입에서 슈톨렌이라는 이름이 나오는게 생소하다. 

기억 속의 슈톨렌을 떠올려본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나에게 내던져져 찌그러진 자판기에 몸을 기대고 서서 당황하는 얼굴. 그 뒤에 분하다고 말하며 도망치던 뒷모습.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간다. 



슈톨렌과 함께한 나날은 이제와선 안개가 낀 듯 묘하게 현실감이 없다. 
웃는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앞서 걸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크게 느껴지던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의 겁많고 작았던 나를 감싸주던 든든한 두 팔을 기억한다. 울고있는 등을 토닥여주던 상냥함을 기억한다. 
잠 못드는 밤, 곁에서 손을 잡아주던 따스함을 나는 기억한다. 

항상 변함없이 거기에 있었다. 정말로 변함이 없었다. 



내가 성장함에 따라 그 변함 없음은 상대적인 작음으로 변해가고 우리의 차이는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처음으로 그의 보호 없이 지령을 완수했던 날, 화를 내던 얼굴이 떠오른다. 위험하다고, 왜 멋대로 혼자 갔냐며 화를 냈다. 
주먹쥐고 들어 올린 손을 아무런 어려움없이 붙잡고 더이상 애가 아니니 참견하지 말라고 한 그때. 
너의 황망한 표정을 떠올린다. 큰 눈에 담긴 당혹감을 떠올린다. 그 눈가에 매달린 쓸쓸함을 기억한다. 



손바닥을 펴본다. 

마지막으로 그 손에 닿아있던 흰 손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굳은 살이 베긴 손바닥과 그럼에도 가는 손가락과 바짝 깎은 둥그레한 손톱과 도드라진 손등의 굴곡. 그리고 아이처럼 따뜻한 온기를 떠올린다. 

손을 꽉 쥐자 그 환상은 사라져버리고 다시 펴진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눈 앞에 펼쳐진 작고 하얀 손바닥. 내 손보다는 훨씬 작아져버린 기억속의 손. 

그 손을 쉽게 잡을 수 있었던 날들이 과거에는 분명히 있었다.




*2012.5.25 홈페이지 백업